향파가 시작한 학생극의 주체가
성장기의 아이들이었음을 생각해 보았을 때
향파의 학생극이 부산에 끼친 영향력에 대한 이야기를
어린이가 주제인 본 특별전에
덧붙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향파는 창작 희곡의 불모지인 부산에서 각본을 직접 쓰는
독보적인 위치였을 뿐 아니라 부산 연극 발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연극뿐 아닙니다.
향파의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향파가 초창기부터 했던 문학 갈래였습니다.
향파가 뿌린 문학과 예술의 씨앗은
부산이 한국영화사에서 최초라는 수식을 달게 되는
'부산영화평론가협회' 창립과
'부일영화상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헤방 후 혼란했던 사회에서 학생들의 바른 정서를 기르기 위해
시작한 연극이 부산 문화계 전체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해서
< 부록 코너 >를 따로 만들어 소개해 드리게 되었습니다.
해당 사진을 누르시면 더욱 큰 화면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동래중에서 학생극이 시작되다.
해방 후 선생이 서울 배재중(현 배재고), 부산 동래중(현 동래고)에서 교편을 잡고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연극이었다.
연극은 관객과의 소통을 지향하고, '선동성'을 지니기 때문에 혼란한 사회에서 성장하고 있는 학생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기 적합하다는 생각에서였다.
당시 연극의 불모지인 부산에서 동래중학생 연극부의 활동은 부산 연극사에서 큰 의미가 있다. 어린 학생들의 연극임에도 불구하고 부산 시내 대부분의 큰 극장뿐 아니라 대학의 초청을 받아 순회공연을 했다.
1946년 6월 1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한국전쟁까지 9개 작품을 50여 회 공연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특히 주목할 것은 대부분 창작 희곡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연극이 대부분 번역극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창작 희곡의 불모지에서 향파가 직접 쓴 각본으로
공연을 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동래중의 학생극은 주변 학교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쳤는데,
부산사범(현 교육대학), 부산고녀(현 부산여고)
경남고녀(현 경남여고), 동래고녀(현 동래여고)
동래가정고녀(현 학산여고), 남성고녀(현 남성여고)에서
연극부가 생기고 학생극이 활발해지며
향파의 창작 희곡을 다수 상연했다.
동래중 연극부가 동년배인 동래가정고녀(현 학산여고)에 가서 지도하기까지 한 것을 보면 당시 위상이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이주홍문학관이 소장하고 있는
동래고 문예집 『군봉』 19호(1972. 1.)에는
부산의 연극사를 알 수 있는 특별기고문이 실렸다.
(동래중이 동래고로 변경되었다.
당시 문예부 지도교사는 최해갑 선생)
동래중(현 동래고)에 부임 후 연극부가 만들어진 계기와
연극부 학생들의 놀라운 재능으로
부산에 연극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을
향파의 글을 빌어 있는 생생하게 알 수 있는 귀한 글이다.
당시 동래중 교장이였던 김하득 선생과 이주홍 사진 /
『군봉』 19호에 실린 이주홍 특별기고문 전문
부산 동래중의 학생극은 대학극, 성인극으로 이어졌다.
당시 동래중 연극에 관여했던 학생, 교사, 주변 인물들은
청문극회(수산대 중심으로 1954년 창립한 극단)의 요원이 되거나
유학 후 대학에서 전문 인력을 양성했으며
향파가 옮겨간 부산수산대학으로 진학하여 연극부의 주축이 되었다.
그중에 설령은 수산대학 연극부,
자유아동극장,(국내최초 아동전용극장),
청문극회를 거쳐 MBC에 근무했고
입체극장, 한국연극협회 부산지부장을 연임하며
부산 연극을 이끄는 핵심 인물이 되었다.
학생극, 대학극, 일반극으로 이어진
부산 연극의 첫 씨앗을 향파가 뿌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수산대학 개교 30년 기념 (1971년)
「백경예술제」 팸플릿이다.
< 수대극회 >는 제16회 공연으로「탈선춘향전」을 공연했다.
1967년에는 향파 작 『위험 지대』로
부산일보 주최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준우승하기도 했다.
< 수대극회 공연 중 이주홍 작품 목록 >
제 2회 (1948. 9.) 『신부추방』
제 3회 (1949. 2.) 『봄 없는 마을』(역)
제 4회 (1949. 4.) 『탈선 춘향전』
제 5회 (1950. 3.) 『성웅 이순신』
제 8회 (1952. 3.) 『구원의 곡』
제10회 (1966. 5.) 『시궁창에도 꽃은 핀다』
제11회 (1967. 5.) 『위험지대』
제16회 (1971. 5.) 『탈선 춘향전』
「탈선 춘향전」 「메아리」
연극과 영화, 그림자극으로 재탄생
「탈선 춘향전」
「탈선 춘향전」은 1949년 『대중신문』에 발표한 작품이다. 그 해에 동래중학교에서 1막을 공연 했고 이후에도 대학로, 지역 축제 등 여러 무대에서 수백 회가 상연되었다.
2006년 향파 이주홍 탄생 100주년에는 기념 공연으로 부경대학교 대학극장 상연되었다. 「탈선 춘향전」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영화 『탈선 춘향전』(이경춘 감독, 우주영화사)는 서울 키네마극장에서 1960년 9월 9일 개봉했다.
「메아리」
「메아리」는 < 국제신보 >(1959.6.18.~22.)에 발표한 동화이다.
오랫동안 초중 교과서에 실렸던 「메아리」는 지금까지도 많은 어린이에게 읽히고 있는 향파의 대표 동화이다.
연극, 그림자극으로 재탄생하여 학교, 극장 등에서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2006년에는 부경대에서 < 이주홍 탄생 100주년 > 기념 공연을 했고, 2019년에는 부산예술회관에서「내 마음의 풍경」으로 각색되어 공연되기도 했다.
'부산영화평론가협회' '부일영화상'의 시작
창립맴버 이주홍
1958년 3월 20일
한국 최초의 영화 평론 모임인
< 부산영화평론가협회 >가 탄생했는데,
이주홍을 비롯한 박두석 (당시 부일 논설위원)
허창도(필명 허창, 부일 문화부장), 장갑상
황용주, 여수중, 김일구 등이 모여 발족한 것이다.
한국 최초의 영화상인 < 부일영화상 >이 생겼고
이들은 < 부일영화상 >의 산파이자 심사위원으로 활약했다.
참고문헌
김남석. (2012). 부산 소재 지역 극단 ‘전위무대(前衛舞臺)’의 공연사 연구. 인문사회과학연구, 13(2), 45-66.
김동규. (2005). 향파 선생과 해방 직후 부산 초기 연극–이주홍문학세미나. 이주홍문학저널, 3, 94-121
민병욱, 정봉석. (1997). 부산의 연극사. 향도부산, (14), 270-322.
정봉석. (2004). 이주홍 희곡의 정체와 부산연극과의 접변양상 연구. 한국문학논총, 38, 187-211.
---------. (2006). 이주홍극문학의 전개양상. 이주홍문학저널, 4, 123-149.
출처
탈선춘향전 영화 포스터 : 한국영상자료원 사료관 https://www.koreafilm.or.kr
그 외 : 이주홍문학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