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홍 <어린이들의 명절날> 전문
부산일보 1961. 5. 5.
출처: 부산일보 누리집 지면보기 서비스
어린이들의 명절날 - 이주홍 -
5월 5일 일년 중에 제일 즐거운 날은 명절날이다. 새 옷 입고 맛난 음식 먹고 즐거운 놀이로써 보내는 날이기 때문이다. 해 마다의 5월 5일은 어린이들의 명절 날이라고 한다. 특별히 어린이들 만을 위해서 명절 날을 마련해 주다니 참으로 고마운 나라이다.
명절 날이라면 틀림없이 아름답고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다. 「산타클로스」는 명절 날이라고 해서 잘 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의 차별 없이 먹을 것, 입을 것을 가지고 놀 것을 가져다준다.
명절 날이라면 틀림없이 특별해 지는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옥 안에 붙들려 있는 저 민망한 죄수들까지도 설 명절 때면 떡국을 얻어 먹는다는 소문인데 하물며 겨레의 귀염둥이, 내일의 임자인 우리 어린이들에게 명절 음식이 없을 것인가.
명절이라면 또 틀림없이 놀이를 하고서 하루를 즐겁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눈 오는 날이면 복실 강아지들도 서로 물고 넘어뜨리고 해서 들판에서 희롱할 줄을 아는데 장난하기를 좋아하는 어린이들이 하는 일 없이 하루 해를 헛 보내고 말 것인가.
그러나 나는 이 복 된 이름의 대접 속에서 왜 서글픈 한숨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슬퍼진다. 먼저 들어보고 싶은 것은 2천 만 민족에서 과연 몇 집의 가정이 이 명절 날을 명절 날 같이 보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어린이들의 명절이라 해서 누가 얼마만큼 기다렸으며 그날이 왔다 해서 그들을 즐겁게 해줄 어떤 새 옷을, 어떤 별식을, 어떤 놀잇감을 마련해 주었는지 알고만 싶다.
내일에 필 겨레의 새싹이라 해서 어떠한 거름을 주었는지 어떠한 바람막이를 하고 있었는지 나는 들은 것이 없다.
보릿고개에 맞서서 풀뿌리, 나무 껍질로 조차도 배를 채우지 못하고 있는 저 농촌의 어린이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학교가 하루의 공부를 쉬게 한다 해도 결코 이 「어린이날」이 즐거울 까닭 없다.
구두닦이가 이루 ○○○ 를 놀아도 좋고 깡통 거지 아니가 이날 하루 만이라도 서러움 없이 배를 채울 수가 있지 않고서는 이 「어린이날」이 생일처럼 경사스러울 까닭이 없다.
어린이들을 위한 노는 날이라면 영화관으로 갈 것인가? 영화관엔 못 들어가기로 되어 있다. 어른들에겐 단것 쓴 것 입에 물리도록 많은 영화들이 기다리고 있으면서 우리나라엔 단 한 군데도 어린이를 위한 영화를 만드는 곳이 없다. 어린이들만이 즐겨서 드나들 수 있는 어린이 극장도 없다. 어린이 도서관도 없다. 어린이 체육관도 없다.
있는 게 있다면 그것은 모든 걸 하지 말라는 금지 명령 하나 뿐이다. 장난을 하지 말아야 한다. 군것질을 하지 말아야 한다. 찻길엘 나다니지 말아야 한다. 만화책을 보지 말아야 한다. 단 한 가지 허락되고 또 독촉을 받는 일은 좋은 사람이 되는 일 뿐인 것이다.
그러면 좋은 사람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어른의 명령만으로써 사람은 좋은 사람으로 자라질 수가 있는 것일까? 어른의 비위에만 맞는 사람이 좋은 사람인 것일까?
좋은 사람으로 자라려면 먼저 가난을 쫓아야 한다. 밥과 함께 정신의 영양도 있어야 한다. 똑똑한 어린이 잡지 하나 없어도 어른들은 놀라지 않는 우리나라 같은데서는 참다운 뜻에 있어서 좋은 사람으로서 자라기가 어렵다.
아름다운 것과 추한 것을 분별해 낼만한 힘이 없어서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 예술 교육은 이 아름답고 추한 것을 분별해 내게 하는데 가장 효과 있는 길이지만 많은 어버이들은 구세군의 자선남비나 본때처럼 외면을 하고 가려고만 하고 있다.
어린이는 어른을 위한 재롱의 도구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어린이는 또 어른의 예정표를 위한 노무자로서의 과외 수업의 지옥으로부터서도 쇠사슬이 풀려져야 한다.
놀 만큼은 놀고 공부 할 만큼은 공부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과서만의 편식에서 벗어나 자기의 입맛에 맞는 온갖 것의 책을 마음 놓고 읽을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아무게나 읽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면 위험하지 않을 것을 만들도록 힘 쓰자는 데에 마음이 가기라도 해야 한다.
주는 것 없이 바란다는 일처럼 염치없는 일은 없다. 우리는 어떤 것을 마련해 주면서 어린이들을 사랑한다 하는 것인지 한번 돌이켜 살펴보고 싶다.
이렇게 가난하고 이렇게 뒤숭숭하고 이렇게 악의 꽃들이 어지럽게 피어 있는 한복판에서 과연 내 자식만을 지켜 나갈 수가 있을까?
어린이라고 해서, 그리고 「어린이날」이라고만 해서 갈 데 올 데 없어 서성대고 있는 몸이 천진하고 즐겁기만 할 수 있을 것인지?
부산일보 1961. 5. 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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