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주홍
< 충렬사 정화 기념비 > 전문
왜적이 바다를 건너 침략 해 왔던 1592년 4월 13일은 한민족으로서 천추에 잊지 못할 통한의 날이 된다.
고려조 때에 몽고군이 우리나라를 침략했고, 그 뒤 조선왕조 때에는 청군이 침략해 왔던 적이 있으나 임진왜란의 불행은 이들 외침보다 몇 갑절 더 뼈저리게 느껴지는 비극이 아닐 수 없었다.
왜냐하면 경제 정책의 빈곤 위에 당쟁으로 국론이 통일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국방이 부실해 있었던 까닭에 더욱 큰 회생을 당해야 했던 사실을 상기한다면 적에 대한 회환이 동시에 통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맨 먼저 왜적의 침공을 받은 부산지방의 성주와 백성들은 일치단결 최후까지 싸워 그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던 것이다.
부산이 없으면 동래가 없고, 동래가 없으면 나라 전체가 어찌 될지 모를 사정을 누구보다도 절감한 동래부사 송상현과 부산첨사 경발, 다대첨사 윤흥신은 적을 맞아 싸운 첫날에 각각 장렬한 전사를 했고 뜻을 같이한 양산군수 조영규 교수. 노개방 교생 문덕견 등도 저마다 맡은 부서에서 용전분투 끝에 옥쇄했다.
일신의 아픔이 나라의 편안에 승화되는 드높음을 몸으로써 통감하지 않았고서야 어찌 군관민 남녀노소 모두가 한 덩어리 되어 목숨을 바칠 수 있었으며 칠 년 전쟁에 동래, 수영에서 일어난 수많은 의병의 봉기가 이분들의 순절한 높은 뜻과 어찌 무관하였겠는가.
적의 피신하라는 권유에도 응함이 없이 마지막 나라에 하직하는 북향 요배를 하고 부친에게 글을 남겨 나라의 위급 앞엔 태산 같은 부모의 은혜도 뒤로 돌리지 않을 수 없음을 표한 뒤 태연자약하게 죽음에 나아간 송상현의 늠름한 태도 그대로 대의의 무거움 앞엔 개인의 목숨이 흥모 같은 가벼운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희박한 곳에 나라의 번영을 생각할 수 없고, 나라의 안보 사상이 미약한 곳에 나라의 태평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진리일진데 이곳에 충열사를 세워 손절 선열들을 추모해 왔음은 다름 아닌 이들 선열들의 충절을 만고에 기리려는 것이었거니와
이번에 박정희 대통령의 분부로 문화공보부와 부산직할시가 경역을 크게 중수 확장하여 정화사업을 완수한 뜻도 이분 선열들의 충절을 국민의 호국 정신으로 받들어 총화 단결로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고 민족중흥의 역사적 대업을 이룩하려 함에 있는 것이니
이제 우리는 선열의 영령에 부끄럼이 없게 그 막중한 은혜를 충성으로써 갚고 추손을 만대 반석 위에 안주케 할 책임을 다하기 위해 우리 모두 가슴에 손을 얹어 멸사봉공 살신성인할 것을 굳게 맹세해야 할 것이다.
1978년 5월 이주홍 짓고 배재식 쓰다
부산 동래구 충렬대로 347 충렬사역3번 출구에서 121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