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
PREV NEXT



‌소악서루 (笑岳書樓): 향파 이주홍의 서재
< 소악서루 > ‘웃음이 넘치는 큰 산에서 글을 쓰는 곳’ 


‌향파 이주홍 선생은 1947년 서울에서 부산 동래로 오셨다. 돌아가실 때까지 이십년 넘게 온천동에서 사셨는데, 일층은 가족들이 생활하는 공간이고 이층을 서재로 썼다. 생전 사시던 집을 문학관으로 개관하였다가 지금 이곳으로 문학관을 옮기면서 전시실 오른쪽에 선생의 서재를 그대로 재현해두었다.

 
‌선생은 방학이면 해인사에 들어가셔서 집필하시고, 평소에는 여기 소악서루에서 주로 글과 서예 등 작품 활동을 하셨다. 

‌소악서루는 선생의 집필 공간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예술가들이 잠시 머물며 선생과 담소를 나누며 술자리를 즐겼던 곳이기도 하다. 많은 문인들이 부산이나 경남을 오면 꼭 다녀가던 곳, 농담과 술을 좋아하셨던 선생의 주변에는 사람이 많기로 유명했다.

‌동요 "나뭇잎 배"의 시인 박홍근 선생님을 비롯한 조순, 구상, 유치환 등 셀 수 없이 많은 문인들이 부산에 오면 꼭 다녀간 곳이다.

소악서루의 단골은 단연 이원수 선생이시다. 선생과 아동문학을 같이하며 고향도 같은 경남이라서 교류가 많았다. 이원수 선생은 서울에 사시면서도 이주홍 선생의 집에 자주 오셨는데 선생의 동화 "살찐이의 일기" 나 "서울에서 온 손님" 등 동화의 주인공으로도 자주 등장한다.

‌수많은 예술가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소악서루에는 많은 일화들이 있다.후배들이나 문인들이 ‘맥주’하면 떠올리게 되는 사람, ‘향파 이주홍’. 서예가 청남 오제봉과는 하룻밤 동안 둘이서 맥주 구십 병을 마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소설가 요산 김정한 선생은 부산에서 가까운 벗으로 서로 집을 왕래하며 자주 술을 마셨다. 요산은 선생을 ‘술로서 나를 앞지른 친구‘ 라고 회고했다.

선생의 서재는 부산문학의 산실이기도 했다.

이곳은 유치환, 이영도 등이 참여하여 만든 동인지 "윤좌"(1954년)를 비롯한 "갈숲" 등 수많은 동인들이 모이고, 결성된 곳이기도 하다.

소설, 시, 희곡, 영화 평론, 동화, 동시, 동양고전 번역 등 수많은 작품들이 저술된 곳이기도 하지만, 바쁜 작업 중일 때라도 누군가 힘들거나 조언이 필요해서 찾아오면 선생은 모든 걸 제쳐두고 사람을 반기던 곳이기도 했다.

‌서재에는 선생의 손길로 반질반질해진 책상과, 가죽이 다 벗겨진 의자가 선생의 체온을 기억하고 있다. 그 옆에는 선생이 앉아서 쉬시던 등나무 의자와 탁자, 선생이 아끼시던 책들과 수석 몇 점이 시간을 이기며 제 자리에 있다. 그리고 들어가는 오른편에는 선생이 마지막까지 들고 다니시던 가방이 아직도 선생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처럼 다소곳이 놓여 있다.

음악적 재능도 많으셨던 선생의 퉁소 실력은 전문가 못지않았다. 행사가 있거나, 취기가 오른 좌중들의 요청으로 선생은 자주 퉁소의 애잔한 음률로 그 시간들을 풍요롭게 했다고 한다.

   향파가 부는 퉁소는
   마적(魔笛)

   온천장 매홧가지, 겨울잠을 깨우고
   꽃 향으로 흘러서
   나비 오는 골목을
   마중하고 있다.

   그 퉁소 소리
   금빛 먹물로 번져
   갈숲에
   연두빛 물감을 풀어
   내 눈의 수정체를 갈아 끼운다.

                            - < 퉁소 부는 온천장 > 조 순

‌부산에 오면 꼭 이주홍 선생을 찾아보던 조순 선생은 "선생이 안 계신 온천장, 누구의 집 앞에서 구두끈을 풀어야합니까?" 하며 선생의 가는 길을 회고했다.


‌서재를 한 바퀴 돌아서 나오다 보면 연필로 스케치한 선생의 초상화가 선생의 시간을 기억해 줘서 고맙다는 듯 웃고 있다.

        글  사진   이주홍문학관 상주작가 김나월

‌출처: 사단법인 한국문학관협회 - 유투브 채널  [문학관 TV]